마침 촌장이 있다가 말했다.유마운은 벌써 며칠을 굶었는지라 보안이 둘로 보였다 다시 하나로 보이고 또 둘 셋으로 보였다. 그때였다. 난데없는 회오리 바람이 일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쳐다보니 맑아 있었다.네, 적장이 창끝에 이 편지를 꿰어 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노인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나이는 흰 머리가 절반쯤 있는 것으로 보아 예순 이쪽저쪽이었다.해적들은 순간적으로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자기방어를 했다.한편, 중국 조정에서는 요동 태수 유마운이 사직서를 던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당고조(618626재위)가 천자의 자리를 태종(626649재위)가 넘기자 태종은 사람을 물색하던 중 요동 태수로 있던 유마운이 충성스런 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백방으로 그를 찾았다.이 말이 태조 이성계에게 전해지자 이성계는 절 이름을 속명사라 하고 손수 현판까지 써주었으며, 나라에서 특별히 보호하도록 하였다.노인은 그날부터 소금을 굽고 종이를 만드는 여가에 보살상에게 공양을 올리고 염불을 했다. 나중에는 아예 소금굽는 일을 마을 사람들에게 맡기고 노인은 염불과 기도에만 열중했다.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란다. 알다시피 나는 죽은 지 여려 해가 되었다만 요사지옥에 빠져 온갖 고통을받고 있단다. 선악의 업보는 너무나 역연한 것이더구나. 아무리 좋은 곳에 태어나고자 해도 악한 일을 한 자는 나쁜 곳에 떨어지고 설사 지옥에 떨어지고자 하더라도 복을 지은 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는 법이다. 내 생전에 많은 죄를 지었더니 죽은 뒤에는 지옥에 떨어져 그 과보를 다 받아야 하는구나.원래 겁이 많은 정진이었지만 해칠 의향이 없는 것 같은 사자의 등에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두려움으로 올라탔다. 사자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산중에서 피난을 하면서도 정세의 흐름에 민감하여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 발발한 이듬해 그는 스승인 부휴를 따라 전쟁터에 나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기도
황공하여이다. 전하.젊은이가 보기에는 잘못 된 곳이 없었지만, 그는 전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이 소문은 선운산 기슭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산적들에게도 전해졌다. 산적들도 노인을 찾아왔다. 노인이 말했다.한참을 쫓아갔다. 문득 새를 놓쳐 버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회정은 또 하나의
인터넷카지노 폭포 위에 허공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다.최 첨지는 운천스님을 따라 지장사로 올라갔다. 그는 열심히 기도했다. 스님들이 예불을 마치고 내려간 뒤에도 그의 기도는 끊일 줄 몰랐다. 밤이 가고 새벽이 와도. 또다시 한낮이 지나고 밤이 와도 그의 기도는 이어졌다. 만 사흘간을 기도 정진으로 시간을 초월했다. 사흘 낮 사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운천스님도 최 첨지의 기도삼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어른이 기도를 성취하겠어) 사시에 기도회향을 한 최 첨지는 아들 영학을 대동하고 산에 올랐다. 운천스님도 동행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이라 울창한 숲은 그대로가 별천지였다. 산까치가 사람을 보고 놀랐는지 푸드득 하며 날았다. 만산홍엽으로 가을산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능선에 올라 심호흡을 하고 일행은 다시 내려왔다. 머루랑 다래랑 온갖 산과일이 거기 있었다. 다래넝쿨을 휘어잡고 익은 다래를 몇 개 따서 입에 넣었다. 꿀맛이었다. 운천스님, 이래서 산이 좋다고 하나 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허허. 그렇구 말구요. 그때였다. 열댓 살 먹은 사내아이가 망태기를 메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최 첨지가 물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소년이 대답했다. 이 산중에 사는 도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엇하러 이 산을 혼자 다니느냐? 무슨 특별한 볼 일이라도.? 약초를 캐러 다녀요. 약초? 무슨 약초? 산삼도 캐고 봉령도 캡니다. 뭐라구, 산삼이라고 했느냐? 네, 그렇습니다. 만병통치약이지요. 이 산에는 그런 명약들 이 참 많습니다. 도라지나 더덕을 캐기보다도 더 쉽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최 첨지 부자와 운천스님은 도